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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 #6 다루는 범주와 낯설음에 대하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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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 #6 다루는 범주와 낯설음에 대하여

대칭,무한,랜덤 그리고 프로그래밍 2024. 12. 22. 00:05

 여기서 탐구하는 범위를 선택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과학적 탐구가 지니는 현실성을 챙길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부적절한 범주에서 모호한 논쟁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제한 혹은 분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가 이 글의 주제이다.

 

 예를 들면 많은 이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혹은 최근 몇 년 간을 자신의 탐구와 진리를 찾는 제한영역으로 본다. 더 과거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과 가까운 주변을 주로 범위로 삼는다. 누구도 인생을 고민함에 있어, 명왕성의 어딘가까지 확장해 상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의 머리속에는 이 지구에서도, 그것도 살고 있는 근처만을 염두해둔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보고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연스레 염두해두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00년 전과 태양계 정도의 우주를 가정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지극히 드물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이란, 수만년과 수억광년을 염두해 두어봐야, 최근 몇년 간에 기반해서 판단되는 일상과 거리만 두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그저 순간이면 충분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적당함의 크기는 인식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아주 특별한 이들에게는 그 범위를 훨씬 늘려 잡아야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지구과학을 탐구하는 학자에게는 수십억년의 지질의 역사의 범주가 이제 그의 필요 범위가 되고, 다행히 같은 그룹의 다른 학자를 만나면 그 터무니없는 범주가 여전히 유효하게 된다. 그렇게 범주별로 유효함이 다를 수 있는 순간을 깨닫게 되고, 그 전환을 느끼게 되면 이제 진리를 바라보는 일정한 틀을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범한 대중 대부분이 공유하는 적절한 통상의 범주가, 모든 이들을 위한 범위가 되지는 않는다. 상상력이 깊고, 사색하는 사람에게는 수억년의 과거와 미래, 수십억 광년의 거리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영화 "루시"에서 묘사한, 지능이 높은 존재는 과거와 미래, 모든 곳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 지식만으로 분자수준의 DNA를 진작에 예언했다. 수많은 지적 탐구를 하는 이들이 미래를 보고 기록해왔다. 이런 행위들은 그다지 통상의 일반적인 범주가 아닌데도, 즉 불필요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긴 시간과 너무나 짧은 공간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범주보다 훨씬 더 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를 열망한다. 즉, 그렇게 더 넓게 보편성을 갈구하는 탐구자가 된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바로 옆과 가까이는 실감하지 못하면서도, 우주 수준의 크기에 대해서 혹은, 찰나이거나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에 열정적으로 접근해서 오히려 일반인들이 관심있는 스케일에서는 무지하게 되는 일조차 발생한다. 그리고 그러한 엉뚱한 스케일의 것들이 필요한 상황에 아주 가끔씩 마주할 때, 그들은 이를테면 선지자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게 된다.

 

 역사 인식도 마찬가지다. 기억하지도 못한 과거를 탐닉할 수도 있고, 터무니 없이 오래된 일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인식이 필요할 때면 그들은 역시 그 모두를 간파한 자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범주에 대한 현실성의 인식은 필요하다. 범주를 더 넓히면 넓힐수록 보편 타당한 진리에 접근하는 희열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살아가는 현실과는 괴리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이 이해되며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은 대부분이 지금 당장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우주의 범주를 필요하는 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범주를 필요할 때가 되면, 혹은 보편성이 너무나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게되면,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소수의 사람이 주목받게 되는 것도 당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영향권하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현실때문에 이런 낯선 근간들에 신경을 못쓰고 있을 뿐이다.

 

 조금 다른 관점을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우리 세상이 영화에서 등장했던, 매트릭스(1999년, 워쇼스키형제 제작)의 세상이면 어떨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매트릭스라면, 그것이 가상인지 아닌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지 않을까? 즉, 가상의 세계라는 범주로 더 확장해서 어렵게 탐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되어야 쓸모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상을 고려해보고 사유한다면, 동시에 더 보편타당해질 수 있는 가능성, 더 확장된 세계, "진실"이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은 더 커지게 된다. 그래서 이는 탐구하는 자에게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대의 평범한 현실에 충실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당면하지도 않을 수 있는 보편성의 순간에 대비할 것인가. 영화에서 제시하는 빨간약을 먹을것인가 파란약을 먹을것인가의 선택과 같다.

 

 그래서 우선 내가 선택하고 탐구하는 범주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니는 의의와 현실성을 곱씹어봐야한다. 당신이 궁극의 진리를 탐구하고 싶다면 그 범주를 상상의 범위까지 모두 늘리기 위해 고민하라. 타협 같은 없으며,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상상해서 확장해야 한다. 그러한 시도를 통한 발견은 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진리를 당신에게 안겨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러면 그러할 수록, 더 당신의 일상과 상관없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더 크게 볼수록, 소위 일상의 사람들이 아는것과는 괴리를 발생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만 보면, 우리는 지금 순간과 괴리되더라도, 더 보편적인 진리를 알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가 얼마나 가치있는지는 지극히 당신이 처한 상황과 의지에 달려있다. 진리라는 의미가 당신을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을 수 있다. 주위의 아무도 관심없을 수도 있고, 소수에게는 그 탐구가 명예를 안겨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것이 진리에 대한 탐구의 현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범주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탐구자가 미리 깨달아서 알고 있어야 할 일이다.